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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언어 – 마지막 수업을 건네며

<구순 명예교수가 적어 내려가는 삶의 관조>
남겨둘 말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제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대신 마음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무거움이라기보다, 오래 쌓인 시간이 만들어낸 묵직함에 가깝습니다.

90세의 삶을 건너오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겨야 할 말들이 선명해질 뿐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오래 살아서 지혜가 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지혜가 늘었다기보다, 쓸데없는 생각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삶이 너무 버거워질 때,
관계가 복잡해져 방향을 잃을 때,
제가 건너온 길에서 건져낸 이야기가
누군가의 등불 하나쯤은 되어주길 바라며.

Conceived by Sunny, created with Gemini.



1장. 삶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늘 버텨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불편한 마음도, 억울한 상황도,
지나갈 것이라고 믿으며 버티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버티느라 가장 많이 아파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버틴다는 것은, 나는 그대로인데
상황만 바뀌길 기다리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것’은 달랐습니다.
바라보면 관계의 본모습이 보이고,
감정의 근원이 보이고,
내가 붙들고 있는 것과 내가 놓아야 할 것이 보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습니다.

세상은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언제든 멈춰 설 수 있다
.”

저는 이 문장을 매우 사랑합니다.
우리는 대개 세상을 바꾸려 애쓰지만
정작 스스로의 마음 앞에서는 멈출 줄을 모릅니다.

멈추어 바라보면
삶은 견딜 만해지고
어떤 관계도 조금 덜 복잡해지고
필요 없는 고통은 서서히 흩어집니다.

2장. 관계는 ‘거리’에서 성숙합니다
저는 평생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1000명이 넘는 학생, 30년 가까운 교수 생활,
수많은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사람의 마음이 부딪히고, 엇갈리고, 끊어지고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끝에서 저는 한 가지 결론에 닿았습니다.

“관계는 가까움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성숙합니다.”

우리는 가까워지면 더 좋은 관계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가까움이 때로는 선을 넘게 하고,
배려를 당연하게 만들고,
예의를 흐릿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군자는 화합하되 같아지지 않는다.

같아지려 애쓰는 순간
우리는 나를 잃기 쉽습니다.

“착한 것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착한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약한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줍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까지 줄지’를 압니다.
그 경계가 곧 마음의 품위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3장. 외로움은 지혜가 거쳐가는 방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집니다.

젊을 때의 외로움은 인정받고 싶어 생기고
중년의 외로움은 역할에 지쳐 생기고
노년의 외로움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외로움이 있는 날은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이 열리는 날입니다.

고요함이 있어야 지혜가 머문다.” — 불경

사람이 너무 많으면 지혜는 들어오지 못합니다.
관계가 너무 무거우면 지혜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외로움이 찾아오면
지혜는 그 빈자리를 찾아와 말없이 앉아줍니다.

저는 이제 외로움을 ‘방’이라고 부릅니다.
조용하고 어둡지만,
세상의 어떤 소음도 닿지 않는 방.
그 방에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무엇을 붙잡고 있었는지,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4장. 마음의 힘은 분별에서 옵니다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이 나의 책임이고
무엇이 타인의 몫인지
분별하지 못해서입니다.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명료함은 슬픔을 밀어낸다.”

명료해진 마음은 무거움을 흘려보내고
관계를 선명하게 하고
나를 지키는 힘을 만듭니다.

저는 인생 후반부에서야 ‘분별’의 가치를 이해했습니다.

–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인가
– 거리를 둬야 할 사람인가
– 나를 지치게 하는 말인가
–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인가
– 붙들어야 할 감정인가
– 놓아야 할 감정인가

이 질문만 분명히 해도
삶은 절반쯤 가벼워집니다.

분별은 차갑지 않습니다.
오히려 따뜻한 이성을 유지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5장. 오래 살아낸 자가 깨달은 단 하나의 법칙
90년을 살고 난 지금,
수많은 이론, 지식, 연구 끝에서
정말로 남아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내 마음의 주도권은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인정받으려고 살았고,
중년에는 책임지려고 살았고,
노년에는 잃지 않으려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황혼을 지나며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은 결국
내가 책임지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지키는 마음에 따라 완성된다는 것을.

외부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내 마음의 권한만큼은
타인에게 넘겨주지 마십시오.

그것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삶의 품위입니다.

6장. 남겨둘 말, 보내야 할 말
저는 이제 시간의 마지막 굽이 아래 서 있습니다.
그렇다고 슬프지도, 두렵지도 않습니다.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이 많은 날을 지나
지금의 나로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입니다.

“삶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단합니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시기를 지나든
그 시간은 반드시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뒤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때의 나도 참 잘 버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삶을 인정하면 시간이 아름다워집니다
저는 긴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페이지를 덮듯
하루하루를 조용히 정리하고 있습니다.

삶을 인정하면
시간은 아름다워집니다.
관계를 내려놓으면
마음은 가벼워집니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면
지혜가 깃듭니다.

그리고 당신 또한
조금씩, 그런 시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단 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이제는 당신의 노를 저으십시오.


당신의 삶이, 당신의 손에서 시작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마칩니다.